1. 한국어다운 문장을 쓰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 관형사+명사 형태보다 부사+동사(형용사) 형태로 쓰기
- 교착어의 특징인 접사와 조사를 쓰임새에 맞게 섬세하게 활용하기
- 의성어와 의태어를 적절히 쓰기
- 시제를 유연하게 표현하기
- 복수 접미사 대신 맥락에 따라 단수와 복수를 구별하기
- 피동형보다 능동형 쓰기
- 주어가 반복되면 생략하기
2. 명사구(관형사+명사)나 명사절이 비대해지는 건 주로 영어문장을 직역하면서 빚어지므로 부사어를 잘 활용하면
한국어답게 고칠 수 있다.
예: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
한국어다운지 아닌지 따지기에 앞서 뜻을 잘 전달하는 표현인지 아닌지 봐야한다. '정확한 화재 원인'과 '즐거운 추석'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화재 원인'이 있어 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고, '추석'이 있어 이날을 즐겁게 보낸다는 게 조리와 순서에 더 맞다.
→ 소방 당국은 화재 원인을 정확히 밝히려 조사 중이다.
추석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아래 문장도 '새로운 시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시작'을 새롭게 한다고 쓰는 게 뜻을 더 잘 드러내고 '많은 양의 비' 대신 '비'가 많이 내렸다고 써야 뜻이 잘 표현된다.
2014년에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다짐했다. → 2014년에는 새롭게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어제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 어제 비가 흠뻑 내렸다.
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 찬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파이의 가족은 캐나다 이민을 위해 인도를 떠난다. → 파이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하려고 인도를 떠난다.
패기에 찬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려는 투쟁을 한다. → 패기에 찬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투쟁한다.
우리는 여기서 약간 조심스러운 구별을 해야만 한다. → 우리는 여기서 약간 조심스럽게 구별해야 한다.
3. '~를 통해'라는 표현 억시 한국어 문장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므로 되도록 '~에'나 '~(으)로'로 바꿔 쓰는 게 좋다.
여러 주제에 대해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명료한 답을 제시한다. → 여러 주제에 대해 다양한 자료로 답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조세 회피자 명단을 공개했다. → 홈페이지에 조세 회피자 명단을 공개했다.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성장한다. →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성장한다.
미자는 합의금을 통해 손자의 문제를 해결한다. → 미자는 합의금을 주고 손자의 문제를 해결한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교양을 쌓자. → 책을 꾸준히 읽어 교양을 쌓자.
4. 일본어 투 표현인 '~에 있어서'는 한국어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탈구조주의자들은 장르와 대중문화와의 관계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일 수도 있다.
→ 탈구조주의자들은 장르와 대중문화와의 관계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일 수도 있다.
5. 한국어는 교착어의 특징을 가졌다.
교착이란 서로 들러붙는다는 뜻인데 교착어인 한국어는 어근에 접사가 앞뒤로 붙거나 여러 조사가 다양하게 붙거나 동사나 형용사의 어미가 상황에 맞게 천차만별로 변하여 어간에 들러붙는다. 그러니 뭔가 들러붙기 전의 원래 모습인 기본형이 어떠한지 아는 것과 들러붙는 말인 접사와 조사와 어미를 잘 구별하는 능력은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긴요하다. 그러면 더 붙여서 어색해진 표현과 덜 붙여서 어색한 표현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은/는'과 '이/가'를 구별하는 규정이 딱히 없으므로 차이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예를 비교해 보면 어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주어를 강조하려면 대개 조사 '이,가'를 붙이고 술어의 내용을 강조하려면 '은/는'을 붙인다. 구조가 같은 앞 절과 뒤 절을 비교하거나 대조할 때는 앞 절의 주어를 '이/가'로 뒤 절의 주어를 '은/는'으로 처리하면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여러분 중에 누가 번역자인가요?
내가 번역자예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나는 번역자예요.
아내가 가난한 현실에 무기력하게 굴복했다면, 남편 크리스는 그런 현실에서 행복을 찾고자 노력했다.
접사가 많이 들러붙는 것이 한국어의 특징이긴 하지만, 복수형 접미사 '들'은 앞뒤 맥락으로 복수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는 단어에는 붙이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들, 너희들, 여러분들, 제군들, 여성들, 수많은 사건들'에서 접미사 '들'을 모두 빼야 더 자연스럽다.
한국어에는 대명사처럼 쓰면 안 되는 부사가 있다. 모두, 스스로, 저마다, 서로 같은 단어가 그러한데, 이들 부사는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현행 어문 규정에서는 이 단어들을 대명사로도 인정하지만, 이렇게 대명사처럼 취급하여 '은/는, 이/가, 을/를, 의' 같은 격조사를 붙이면 부사의 원래 역할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되도록 삼가는 게 좋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 우리가 모두 노력하여
스스로가 각성하여 → 스스로 각성하여
저마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 저마다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서로를 격려하며 → 서로 격려하며
한국어 문장에는 같은 명사가 바로 다음 문장에 나오더라도 대명사로 받지 않고 원래 단어 그대로 살리는 경우가 잦다. 그래야 뜻도 더 잘 드러난다. 외국어 문장의 '그', '그것', '이것' 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대명사로 옮기면 그 대명사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헷갈릴 떄가 있다. 아래 번역문을 보자.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위대한 과학 저술이다. 그것은 선행 연구들이 그러하듯 그것을 경시하는 전통과 싸워야 했다.
둘째 문장의 첫째 '그것'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가리킨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만 둘째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드러나지 않아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외국어 문장의 대명사를 기계적으로 '그'라고 옮기면 미묘한 어감을 놓칠 수 있다. 아래 번역문을 보자.
우주론에서 케플러는 그의 타원보다 더 깊이 내재한 사물의 근거를 찾으려 했다.
위 문장에서 '그'는 문장의 주어인 케플러 자신을 가리키므로, '그의'를 재귀 대명사를 사용해 '자신의'라고 다듬어야 한국어 문장의 자연스러운 어감에 더 잘 맞는다. 주어가 명시된 문장에 주어에 해당하는 대명사가 또 나오면 '자기'나 '자신'으로 고쳐 옮기는 게 좋다.
원문: He expressed his view through his essay.
어색한 번역: 그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그의 관점을 표현했다.
적절한 번역: 그는 자신의 에세이로 자기 관점을 표현했다.
6.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했다.
이 특징을 잘 살리면 더 낫게 번역할 수 있다. 앞에서 '페이저'를 이긴 용어인 '무선 호출기'를 설명했는데 무선 호출기보다 일상에서 더 자주 쓰이는 표현이 있다. 의성어가 발달한 한국어 특징을 잘 살린 '삐삐'다. 이 표현은 무선 호출이라는 본래 기능을 기호처럼 표현한 좋은 번역이다. 공적 의사소통에서 사용되는 무선 호출기와 더불어 삐삐는 사적 의사소통 영역에서 병존한다. 삐삐처럼 사적 의사소통에서 두루 쓰이는 좋은 번역어 중에 깜짝이도 있다. 도로 교통법을 비롯한 공적 의사소통 영역에는 방향 지시등이란 말이 쓰이지만 일상 의사소통에서는 누구나 깜빡이라고 쓴다.
겨울에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를 달린 적이 있다. 터널을 지나자 눈길 주의 구간이 나왔는데 표지판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Slow, Safe, Smile
한국 고속도로에 영어를 로마자로 덜렁 표기한 것도 못마땅하거니와 문법과 균형에 어긋나 안타까웠다. 한국어로 굳이 옮기자면 이렇다.
느린, 안전한, 웃음
의태어가 발달한 한국어의 특징을 잘 살리면 문장이 더 한국어다워지며 균형을 맞추기도 쉽다.
엉금엉금, 살금살금, 방긋방긋
한국어다운 표헌이란 한마디로 한국인이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써 온 표현이다. 한국인이 오랜 세월 써 온 표현 방식이 근래에 들어온 용어나 표현 형식보다 전달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참고 도서: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_이강룡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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